'세계 최초'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창업 초기에 TSUTAYA 매장의 영업 활동은 DVD, CD의 대여가 중심축이었다. 그래서 대여가 고객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나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대여가 '고객의 소유'라는 개념을 확대시켜주는 서비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상이나 음악 소프트는 의식주와 달리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가 아니다. 즉 항상 주변에 있어야만 생활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유하고 싶은 기회는 반드시 존재한다. 고객을 대신해서 '있으면 좋겠지만 매순간 필요한 것은 아닌 특수한 상품'을 소장해두는 곳. 이것이 바로 대여 매장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에서 심야 영업이 시작된 것이다. TSUTAYA가 고객의 소유를 대행하는 곳이라면 영업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고객의 소유 개념이 확대되는 것과 직결된다.

단순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의도에서 탄생된 기획은 반드시 실패한다. '새로운 업태'혹은 '새로운 발상'처럼 듣기 좋은 말에는 은폐된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다. 즉 고객의 눈에 기획자의 억지 논리가 보이지 않도록 숨겨져 있다. 대부분의 경우 매장의 입장과 고객의 입장 사이에는 격차가 존잰한다. 정반대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럴 때에 매장 측은 온갖 감언이설을 동원하여 고객에게 발생한 불이익과 불편함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초래됐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이것은 세계 최초의 시도입니다."라는 말의 이면에는 "처음 시도되는 일이라 다소 당황스러운 점이 발생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라는 변명이 존재한다. 그러나 고객은 특별히 새로운 서비스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느끼기에 쾌적하고 높은 가치의 서비스를 원할 뿐이다. 새로운 서비스든, 오래된 서비스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앟는다. 그렇지 않다면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전통 여관이 해외의 유명 호텔과 어떻게 어개를 나란히 하며 인기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고객의 욕구를 '새롭다'는 면죄부를 이용해 무시한다면 고객은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그런 기획은 잠시 동안 고객의 관심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머지않아 고객의 지지를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획은 늘 회의실 안에서 탄생된다.


'고객가치'의 미러이미지


'고객가치의 창조'라는 주제를 잊지 않는 것. 이는 큰 성공의 길에 도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즉 이 주제는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손에서 놓아서는 안 되는 '나침반'과 같다. 이 나침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열정을 쏟아도 요점에서 빗나가게 되고, 쳇바퀴만 돌리게 된다.

또한 '고객가치'를 생각할 때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고객가치에는 두 가지의 의미, 두 가지의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나는 '고객이 생각하는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고객 자체가 갖는 가치'다.

그렇다. 기업에게 고객은 고유 가치를 지닌 재산이다. 이는 명확한 사실이다. 고객을 능가할 만한 자산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고객'이라는 재산은 기업이 곤경에 처했을 때만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기업 활동도 실은 고객이 지지해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또한 고정 고객이 있으면 매출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불만과 불평조차 기업에게는 소중한 정보가 된다. 각 기업이 서로 경쟁하듯 자사 카드를 발행하는 것도 '고객'이라는 재산을 손에 넣으려는 의도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재산이 갖고 싶다는' 상술로 카드를 찍어낸들, 시쳇말로 요즘 소비자들에게는 잘 먹히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앞장에서 서술한 바 있다. 기업이 원하는 대로 조정당할 만큼 요즘 소비자들은 어수룩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객가치'의 양면성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고객이 생각하는 가치'와 '고객 자체가 갖는 가치'에 대해서 말이다. 이 두 가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신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미러이미지, 즉 하나의 존재가 갖는 두 측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고객을 얻고 싶다면, 기업은 고객이 생각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것을 창조하고 제공해야 한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에게 뭔가를 받고 싶다면 자신이 먼저 뭔가를 내밀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저 거울 앞에 서서 막연하게 기다린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은 아무 것도 주지 않을 테니까.

특히 현대 사회에서 고객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받는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다. 나중에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인터넷의 발달은 고객에게 스스로 정보를 편집하고 발신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인터넷 사회에서 고객은 기업의 이점을 널리 알리는 응원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결점을 파헤치는 비평가이기도 하다. 이처럼 기업의 재산으로서 고객의 가치는 이전과 다르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앞에서 언급한 미러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고객의 수준이 높아진 만큼 고객에게 제공해야 할 서비스도 고도화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건축이란, 곧 미디어다!


"기획을 세울 때는 철저히 심플하게 생각한다." 이는 기획을 세우는 데에 중요한 방법론 중의 하나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다양한 요소가 서로 얽혀잇다. 그런데 이런 요소 하나하나에 얽매여 있으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 한 번은 불필요한 군살처럼 달라붙은 현실적이면서도 사소한 요소를 도려내고, 직관력을 통해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기획을 세우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사업에 관해서 생각할 때도 그렇다. 나는 사업에는 두 가지 요소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고객이고, 다른 하나는 상품이다. 고객에게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사업의 본질이다. 나머지는 지엽말절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기획을 세울 때 1) 어떤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할 것인가? 2) 그 고객을 위해서 어떤 상품을 준비할 것인가? 3) 어떤 방법으로 그 고객과 상품을 서로 연결시킬 것인가? 이 세 가지 사항만 신중하게 고려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이칸야마 프로젝트가 어떤 상품을 준비할 것인지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우선 매장 건물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하곘다. 건축물의 콘셉트는 어떻게 결정됐고, 그것을 구체화할 건축가는 어떻게 선정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에 나는 다이칸야마 프로젝트의 건축 이미지로 '집'을 떠올렸다. 매장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을 상상한 것이다. 편안하면서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장소 말이다. 즉 있고 싶은 만큼 있을 수 있는, 더 나아가 있고 싶어지는 공간을 떠올렸다. 이 발상은 '프리미어 에이지를 고객으로 설정'함을 전제로 삼는다. 그래서 나는 "프리미어 에이지가 오고 싶도록 만드는 장소는 어디일까?" 하고 고민했다. 그 결과, 서로 분리된 사람과 정보가 바삐 오가는 매장이 아니라, "유유자적하게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집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나는 이러한 생각에 기초하여 집의 이미지를 건축물로 구체화하는 방법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건축 경연 대회를 통해서 파트너 건축가를 선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까지 TSUTAYA는 건축 경연 대회를 도입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시부야역 앞에 대규모 건물을 지었을 때도, 롯폰기 힐즈에 새로운 매장을 오픈했을 때도, 미리 정해둔 건축가와 함께 작업했다. 내가 생각한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건축가에게 전달하면 건축가는 전문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건물을 완성했다. 그런데 이번 다이칸야마 프로젝트만큼은 기존의 방법론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프로젝트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집'이 집으로서 그 기능을 다할 때는 구성원과의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이 확보될 때다. 또한 다이칸야마 프로젝트가 달성해야 할 목표는 프리미어 에이지가 모이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곳은 프리미어 에이지와 같은 매력적인 사람들이 스스로 '발전기'가 되어 젊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자력을 발산하는 장소여야 한다. 단순히 상품을 진열해 두면 사람들이 찾아와서 상품을 둘러보고 구매하는 매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질의 공간이어야 한다. 이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관점이 없으면 절대로 창조해낼 수 없다.


방송국 소재지와 시청률의 특이한 상관관계


전 세계의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동시에 전달되고, 동시에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현실적인 거리는 별 의미가 없다. 분명히 이런 발상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획은 어디가지나 고객이 피부로 느기는 감각과 공감에서 시작된다. 실제 고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에 사무실을 두면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사고의 레벨은 유지되어도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은 둔해지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사무실에서 탄생된 기획은, 즉 모니터가 나열된 회의실에서 짜낸 기획처럼 질이 떨어질 수박에 없다. 




보통 사람의 지평과 방향성이 기획을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하나의 예로 상품을 주고받는 장소를 賣場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판매자의 관점이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買場이 되어야 하는 것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법이다.


기획의 가치는 어디에 달려있는가?


그 기획이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 에 달려있다.

TSUTAYA 서점을 창업할 당시 심야영업형태가 참신한 시도였는데, 이는 '심야까지 영업을 하면 사람들의 눈에 띌 것이다'도 아니고, '영업시간을 늘리면 그만큼 이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도 아니고, '심야가지 상점 문을 열고 노력하는 모습을 어필하고 싶다' 라는 계산 때문도 아니다. 다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심야에도 영상이나 음악 소프트웨어, 또는 서적 등을 구입하거나 빌릴 수 있으면 정말 편하겠다는 생각에서 시도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고객의 입장에서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영업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이 증가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플랫폼이 넘치는 상황에서 플랫폼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제안 능력이 있어야 한다. 플랫폼은 수없이 많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단순히 '선택하는 장소'일 뿐, 플랫폼에서 실제로 선택을 수행하는 사람은 고객이다. 그렇다면, 플랫폼 다음으로 고객이 인정해줄 만한 것은 '선택하는 기술'이 아닐까. 각각의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 주고, 선택해 주고, 제안해 주는 사람. 그것은 매우 중요한 고객 가치를 낳을 수 있으며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게 해 주는 자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이 중요하다. 디자인은 가시화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념이나 생각에 형태를 부여하여 고객 앞에 제안하는 작업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결국 '제안'과 같은 말이다.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상품은 용도만 충족하면 되었다. 즉, 기능만 충족하면 상품으로서 성립될 수 있었다. 유리잔은 액체를 담을 수 있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디자인까지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 뒤를 이은 세컨드 스테이지에서도 선택을 하는 사람은 고객 자신이니까 '디자인은 부가 가치'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생활하는 장소는 서드 스테이지, 제안 능력이 있어야 하는 시대다. 제안은 가시화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디자인, 그러니까 제안을 가시화하는 능력이 없다면, 또 디자이너가 되지 못하면 고객 가치를 높이기는 어렵다.

우수한 디자인은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제안을 내포하고, 표현까지 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밀봉성이 높은 세련된 텀블러글라스라면 그것을 선택한 사람에게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하고, 섬세한 의장이 들어간 와인글라스라면 때때로 양질의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제안이야말로 기획 회사가 완수해야 할 역할이다. CCC의 중심적 철학은 앞에서 예로 든 고객 가치라이프 스타일 제안이라는 두 가지 단순한 키워드로 요약된다.


서점은 서적을 판매해서는 안된다


고객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서적이라는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제안이다. 따라서 그 서적에 쓰여 있는 제안을 판매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깡그리 무시하고 서적 그 자체를 판매하려 하기 때문에 '서점의 위기'라는 사태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서점 내부의 정경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 매장으로 들어가면 가장 눈에 띄는 장소에 설치된 '매대'에 갓 출간된 잡지들이 쌓여 있다. 그 앞에는 신간 단행본 등이 진열되어 있고 더 안쪽에 출판사별로 분류된 문고본 책장과 신서 책장이 위치해 있다. 여행 가이드북과 참고서, 사전, 만화 등은 또 다른 공간에 놓여 있다.

이것이 기성 서점이 일반적으로 매장을 구성하는 방식인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예를 들어, 긴 휴가를 앞두고 유럽으로 여행을 갈 계획을 세웟다고 하자. 그럼 어느 코너로 가야 할까. 서점 안쪽의 여행 가이드북이 진열되어 있는 코너일까. 그런데 신간 잡지에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지역이 특집으로 다뤄졌을지 모른다. 아니, 유럽을 무대로 삼은 소설도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문고본이 진열되어 있는 책장으로 가야 할까? 만약 해당 지역의 문화적 배경을 해설해 놓은 책을 찾는다면 신서가 진열된 서가도 한 번쯤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즉, 서점의 매장은 고객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잡지, 단행본, 문고본 등의 분류는 어디까지나 유통을 하는 쪽의 입장에서 이뤄진 분류다. 유통 과정에서 정해진 그런 분류를 매장에 그대로 도입하는 이유는 고객의 욕구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은 단순히 판매를 하는 '판매 장소'일 뿐 구입을 하는 '구입 장소'가 아닌 것이다. 정작 주역이어야 할 고객이 존재하지 않는, 열기가 식은 공간을 만들어 놓고 '책이나 잡지가 팔리지 않는다.' 라고 한탄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래서 CCC는 책의 형태 등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그 제안 내용에 따른 분류로 서점 공간을 재구축했다. 이것이 서점의 이노베이션이다. 지금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을 방문해 보면 그곳은 여행, 음식과 요리, 인문과 문학, 디자인과 건축, 아트, 자동차 ... 라는 식으로 장르에 따라 구분이 되어 있고 그 안에서도 내용이 가까운 것들끼리 단행본이든 문고본이든 틀을 넘어 횡단적으로 진열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방문한 고객은 "유럽을 여행한다면 이런 문화를 접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거나 "건강을 생각한다면 매일의 식사를 이런 식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는 제안을 받게된다.

유통에서의 습관은 이처럼 강하게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손대기 어렵다. 흔히 생산자에게 가까운 쪽을 강물의 '상류'로, 소비자에게 가까운 쪽을 '하류'로 부르는데 그 강물 속에 계속 몸을 담그고 있으면 어느 틈엔가 흐름에 익숙해져 상류에서 흘려내려 오는 물살에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게 되어 버린다.

기존의 흐름에 젖어 편리하게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익숙해질수록 바람직한 자세를 갖추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CCC에서는 한 가지 기획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들어가면 일부러 그 분야의 아웃사이더를 담당자로 앉히는 경우가 많다.

이노베이션은 언제나 아웃사이더가 일으킨다. 따라서 비즈니스 세계에 몸을 둔 사람은 아웃사이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업계 흐름의 외부에 존재하는 일반 고객의 입장에 서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유능한 사람과의 만남


유능한 사람과의 만남은 보수나 대우라는 외적 조건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외적 조건은 당연히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전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전제 위에 그들이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느낄 수 있는, 구심력을 갖춘 이념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 열쇠다.

내가 사장이고 그들이 사원이라고 해서, 나는 자본가이고 그들은 노동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관계는 결코 그런 도식으로 표현될 수 없다. 그들이야말로 확실한 지적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들과 나는 직렬 관계가 아니라 병렬로 놓인 관계다. 그런 인식 없이 우수한 전문가와 협업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효율은 절대적인 기준인가?


지금까지 인간 사회는 '보다 편리하게'라는 방향을 향해 진행되어 왔다. 보다 편리하게 이동하기 위해 철도가 부설되었고 고속 도로가 조성되었다. 보다 편리하게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전화가 발명되었고 그것은 또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효율과 행복은 다르다.

효율은 확실히 편리하고, 편리는 대부분의 경우 쾌적함을 이끌어 낸다. 단, 쾌적함과 행복은 등가가 아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숲 속의 산책로를 지나가야 한다면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곳을 걸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은 결코 효율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렇다, 어쩌면 효율과 행복은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다이칸야마 T-SITE'를 창설했다. 효율성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기분 좋은, 편안한 공간을 고객에게 제공한다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각 입주자들은 숲 속의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부지 안에 원래 있었던 느티나무는 그대로 남겨 두었다. 절대로 베어 내지 못하게 했다.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 '자연'만큼 효율성이 나쁜 것은 없다. 가령 나무를 심어 두면 가을마다 낙엽이 떨어져 청소를 해야한다. 여름을 맞이하기 전에는 가지를 쳐 주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일손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그 숲을 지나는 바람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고,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드는 햇살은 정말 아름답다. 나는 다이칸야마에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쪽이 행복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적자본이 대차대조표에 실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상쾌함과 고양감은 숫자로 측정할 수 없다. 수량화할 수 없는 감각이야말로 행복과 가까운 것이 아닐까.

기획 회사는 고객 가치의 확대를 도모하는 회사다. 바꾸어 말하면, 고객에게 행복이나 풍요로움을 주기 위한 기획을 낳는 회사라는 뜻이다. 그 행복이나 풍요로움이 효율과는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있는 이상, 기획 회사라는 조직의 완성도를 효율성으로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 내가 '휴먼 스케일'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효율적이어서가 아니라 행복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휴먼 스케일 조직의 구성원에게 일부러 효율성이 나쁜 일을 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효율성을 유일한 잣대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효율성은 목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결과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처음부터 그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


자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을 얻으려면 신용이 필요하다. 약속을 지키고 감사를 잊지 않는 인간으로서 신용을 얻어야,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인간은 비로소 자유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 Recent posts